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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생각이 있다

방송은 애견, 애묘를 미화하지 말아야

by Jerome Eugene Morrow 2018.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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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에 보면 애견과 애묘에 대한 이런 저런 프로그램이 많다. 언제나 그렇듯 이런 프로그램은 시청률이 잘 나온다. 동물, 아이, 여성의 미를 다룬 프로그램이니까. 

하지만 현실은 방송의 모습과 달리 굉장히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다.

노상방뇨(소변은 치우는 것도 불가능하거나 치우지 않는다), 개짖는 소리, 고양이 우는 소리는 몹시 시끄럽다.

목줄을 해도 무서워하는 사람은 무서워하는데, 다가오지 마세요 라면서 산책길과 일상적인 보행을 불편하게 만든다.  가끔씩 동물을 무단으로 버리고 사회적 비용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도 결국 키우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모른다. 자신의 '반려동물'와 '애완동물'이 얼마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지.

애견, 애묘는 흡연자의 민폐와 거의 비슷하다. 

동물을 키우지 않는 사람들은 고양이와 강아지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주는 그 불편함이 싫다는 것이다.그럼에도 티비는 여전히 귀엽다, 불쌍하다, 딱하다, 훈련을 하면 괜찮다 (그래서 훈련을 모두 하고 있는가?)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동물 키우기는 금지되어야 한다. 어제 어떤 교수는 강아지와 고양이는 키워지도록 1만년전부터 사회화되어왔다고 말한다. 해괴한 논리다. 수백년전부터 식용으로 동물은 인간과 함께 해 왔는데 그럼 먹어도 된다는 것인가?

'애완'의 개념은 귀족과 왕족에서 시작되어 계속 품종개량을 인간의 욕심으로 진행해왔고, 서민과 목장에서는 다른 동물을 지키는 방범 가축의 개념과 결국은 죽여서 털을 얻거나 고기를 얻는 목적으로 길러져왔다. 그리고 그것 역시 매우 제한적인 환경에서 그렇게 공동생활을 해왔다. 현대의 아파트 가옥구조와 현대의 라이프스타일에서 강아지와 고양이 키우는 나머지 사람들에게 무척 폭력적이다.

마트에서 파충류, 양서류, 설치류, 강아지, 고양이 잘도 판다. 대체 이걸 왜 팔고 사는가? 그러면서 동물원과 아쿠아리움 동물들이 철창안에서 불쌍하다고 말한다. 이중 잣대다. 내가 키우는건 괜찮고 전문 사육사가 키우는건 문제가 되나?

동물을 키우지 말아야 한다. 이미 수백만명이 키우니까 어쩔 수 없다고, 오케이. 그럼 더 이상 못키우게 하고 방송에서는 동물을 키우는 것이 해악이라는걸 설명해줘야 한다. 이쁘다, 귀엽다, 교육하면 나아진다 이런 이야기 하지말아야 한다. 버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냥 팔고 살고 키우지 말라는 것이다. 담배 피우는 것처럼 남에게 너무 많은 피해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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