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숙 작가의 당제는 겉으로는 댐 수몰을 앞둔 마을에서 '전통'과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영감의 이야기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야기가 그 이상이다. 무엇보다 애끓은 부모의 마음이 들어있다. 북한으로 끌려갔는지 자발적으로 넘어갔는지 생사를 알지 못하는 아들을 둔 한몰 영감과 한몰댁은 마을의 가장 오래된 노인들이다. 이들은 아들이 살아있다고 믿고 돌아올 것을 기대하지만 그러다가 잡혀가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갖고 있다.
마을은 새로운 댐이 들어오는 중이다. 때가 되면 당제를 지내면서 도깨비에게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지만 이미 그것은 노인들의 당제가 되어버렸다. 도깨비를 찾아가 제삿밥을 주고 도깨비에게 아들이 혹여 마을로 돌아오면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에는 마을을 둘러싼 여러개의 전설이 소개된다. 그리고 전설들이 꽤나 재미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읽다보면 아들에 대한 부모의 정을 잠시 잊게 되기도 하는데 송기숙 작가가 어떻게나 이 전설 몇가지 이야기들을 맛깔나게 썼는지 아주 재미있다.
하지만 이 글의 백미는 4장이다 한몰 영감이 당제를 지내고 남은 밥을 다리 아래에서 도깨비에게 혼잣말을 하는 장면이다.
"이런 소리는 사람이란 종자들하고는 입도 짝할 수 없는 소리라 우리 내외만 벙어리 냉가슴 앓듯 끙끙 앓고 있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달리는 길이 없길래 자네(도깨비)들을 찾아왔어. 내 말 귀 넘겨듣지 말고 깊이 새겨들어주게. ... 그런디 그 녀석이 살아 있다면 지금 어디 있겄는가? ..... 즈그 엄씨나 나나 한 가지 걱정이 있네. 그 녀석이 혹시 간첩으로 뽑혀서 겂없이 이쪽으로 내려오지 않을까 걱정이 그 걱정이여. ... 이 일을 으쨌으면 좋겄는가? 그 녀석이 어떻게 찾아오든 내 집만 찾아오면 지가 공산당이 아니라 공산당 할애비가 되았더래도 자수를 시킬 작정이네마는.... 그래서 시망 동네 사람들이 다 떠나도 우리 내외는 여그서 안 떠날 작정이네. "
여기까지 읽어도 눈물이 나는데 그 다음에 한몰 영감은 더 독자들을 미치게 만든다.
"한 가지는....... 제 어미 아비가 그 집에서 사는 줄을 어뜨코 알 것이냐 이것이고, 자네(도깨비)들도 알다시피 동네로 들어오는 길이 그 길말고도 이쪽으로 한나가 더 있는디, 이 길로 오먼 으짤 것이냐 이것이네.. 우리집 녀석이 다른 길로 오거든 자네들이 우리집을 쪼깐 지시해주게"
"만당간에 그런 일이 있으먼 우리집 녀석한데 말을 전할 방도를 한번 생각해보게. 천행으로 그런 방도가 있거든 그 녀석한데 이렇게 쪼깐 전해주게. 자네 부모들은 둘이 다 무탈한게 그것은 한나도 걱정 말고 .. 절대로 내려오지 말라더라고 전해줘. 이쪽 남한에는 어디를 가나 골목골목 간첩 잡으라는 표때기 안 붙은 데가 없고, .... 없네 없어. 발붙일 데가 없어"
"사상이 뭣인가 모르겠네마는, 그 사상이라는 것도 사람이 살자는 사상이제 죽자는 사싱은 아닐 것인디, 피붙이들이 생나무 가지 찢어지듯 찢어져서 삼십년을 내리 소식 한번 듣지 못하고 산대서야 그것이 지대로 된 사상이겄어!"
그리고 5장은 그 슬픈 안내문으로 끝을 맺는다...
"이 재 너매 잇뜬 감내고 동내는 저주지 땜을 마거서 한 집도 업씨 모두 다 업써저불고, 거그 살든 부님이 어매 한물댁하고 아배 한물 영감은 이 집서 산다. 부님이 아배 이름은 김진구다"
황석영 작가는 송기숙 작가가 '민청학련 '사건을 겪고, 그 뒤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모진 고초를 겪은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리고 그를 '성님'으로 기억하며 그의 소설에서 마을이 물에 잠기고, 거기 살던 정든 사람들과 기억과 시간과 전설이 사라졌듯이 그의 병든 몸은 이곳을 떠났을지라도 벗들은 모두 그의 익살과 장광설을 웃음을 머금고 기억할 것이라고 후기를 맺어놓았다.
아마 이 황석영 한국 명단편 101 4권은 유독 부모와 자식 이야기가 많이 소개되어 있는데 이 당제 역시 그러하고 꽤나 눈물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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